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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메리카의 오순절운동 - 브라질 본문

Anthropology (인류학)

남아메리카의 오순절운동 - 브라질

Museum Park 2018. 12. 17. 14:56

브라질은 아마도 세계에서 오순절/은사주의자들이 가장 많은 국가일 것이다.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에서 실시된 한 조사에 의하면 이 도시 모든 교회의 61%가 오순절교회들이다. 그리고 710개의 새로운 교회들이 1990년부터 1992년 사이에 설립되었는데, 이는 모두 오순절교회들이다. 그런데 비해 같은 시기동안 가톨릭교구는 단 1개가 생겨났다. 1990년대에 브라질에서는 가톨릭신자들보다 오순절신자들이 주일마다 교회에 넘쳐났다. 2007년에는 브라질 인구의 대략 17%정도의 사람들이 오순절신자들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오순절운동의 성장은 브라질의 심령주의에 대해 한줄기 빛과 같은 역할을 했다. 음반다(Umbanda)는 가장 성행했던 것이었고, 마쿰바(Macumba)는 아프리카 토속신앙적인 요소가 강했다. 그 외에더 칸돔블(Candomble) 등이 있는데, 이와 같은 심령주의 적인 미신들은 서부아프리카와 아메리카토착민들의 전통신앙이 섞인 유럽사람들(Kardecian)의 심령주의와 혼합되어, 브라질 특유의 형태의 것을 창조하여 생겨난 것이다. 브라질 인구의 약 60%는 심령주의의 형태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인 영적세계를 인정하는 오순절주의자들은 이것에 정면으로 반대했다. 그리고 개종자들로부터 음반다와 다른 브라질의 귀신들을 일상으로부터 쫓아낸다. 이것은 오순절운동의 매력이자 강점 중 하나이다.

브라질의 오순절운동의 초기형태는 윌리암 더함(William Durham)의 시카고 사역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전에는 발도파 교도던 그는 이탈리아사람들에게 오순절적 메시지를 전하던 그의 동료 루이기 프란체스콘(Luigi Francescon)과 함께 1907년부터 예언사역을 하였다. 프란체스콘은 1909년 이탈리아 전역과 미국에 이탈리아인 교회를 세운다. 그리고 그는 1910년 그는 상파울루(Sao Paulo)에 갔다. 당시 상파울루에서 이탈리안 공동체는 백만명이 넘었는데, 그는 이 사람들을 위해 사역하기 위하여 상파울루로 온 것이었다. 그는 성령침례에 대해서 이탈리아 장로교인 들에게 설교하였으나, 결국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교회로부터 결국 쫓겨나게 되었다. 그리고 한 오순절 교단을 만들게 된다. 이것은 브라질에서의 첫 번째 오순절 교단이며, 그 이름은 Congregacioni Christiani(CC)이다. 1935년 무렵, 이 교단은 그들의 예배에 포르투갈사람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브라질 원주민들을 전도하였다. 현재 이 교단은 포르투갈어 이름으로 Congregacao Crista no Brasil(Christian Congregation in Brazil, CC)라고 알려져 있다. 2010년 이 교단은 대략 200백만 개의 교회들이 생겨나는데, 이것은 브라질에서 7번째로 큰 오순절 교단이다. 브라질의 다른 오순절교회들과는 달리, CC는 설교에 대한 준비가 미흡한 전임목사 대신 윗세대사람들과 부제들(가톨릭이나 성공회, 정교회에서 사제 밑의 직급)협력자들로서 세웠다. 십일조를 강조한다거나, 헌금을 취한다거나, 성도들에게 물질을 요구한다거나, 길거리 설교자를 세운다거나, 교단을 홍보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한 것이 이 교단을 놀랄만하게 성장하게 하였다. 게다가 그들은 남자들과 여자들은 구별되어 앉아 예배를 드리게도 하였다. 여자들은 장신구착용이나 화장은 할 수 있되, 흰 머리덮개를 착용하고 예배를 드려야 했다. 기도는 무릎꿇고 하게 하였다. 이러한 CC의 예배의식은 대부분의 브라질 오순절교회들에서 하는 예배의 형식보다 더욱 정형화되고 차분해졌다. ‘Gloria!(Glory!)’라고 3번 반복하여 외치는 순서가 있었는데, 이 때문에 사람들은 이들을 ‘Glorias’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관행은 오늘날 남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중·남미 전체의 오순절교회들에서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 그 교단은 재정적인 부분을 포함한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해 도움이 필요한 구성원들에게 매주 베풀었다. 이것은 상파울루에서 집중되었었지만,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 등의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이탈리아와 포르투갈에도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이 교단은 아주 엄격하고 보수적인 성격의 복장규정과 도덕성을 띄었고, 가족관계를 강조하였으며, 다른 교회들과 관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유일한 참된 교회로 간주되는 성향을 보이기도 하였다.

브라질의 Assembleias de Deus(Assemblies of God, AG)는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개신교단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브라질 전체 인구의 31%나 되는 6천만 브라질 은사주의자들사이에서 여기 속한 사람들이 20102천만 명이나 되었다. AG1914년 미국에서 만들어진 AG와 이름이 비슷하지만 서로 관련은 없다. 이것은 2명의 스웨덴계 미국인들로 인해 시작되었는데, 그들의 이름은 군나르 빈그렌(Gunnar Vingren)과 다니엘 버그(Daniel Berg)인데, 이들은 더함과 연관된 사람들이었고, 시카고에 있는 스웨덴 사람들 교회와 관련 있는 사람들이었다. 침례교 목사인 빈그렌과 버그는 각각 예언을 받았는데 그것은 ‘(파라)Para’로 가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먼저 1910년 브라질 북부의 벨렘(Belem)으로 갔다. 같은 해, 프란체스콘은 상파울루로 이동하였다. 빈그렌과 버그는 포르투갈어를 할 줄 몰랐기 때문에, 그들은 스웨덴 선교사가 사역하는 침례교회의 지하창고에서 모여 기도하였다. 그리고 부흥을 꿈꿨다. 시간이 지나자 몇몇은 성령침례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19116월 그 침례교회에서 독립한 18명의 사람들은 공동체를 형성하는데 빈그렌은 그들의 목사가 된다. 이러한 일들로 인하여 생겨난 이 교회는 Apostolic Faith Mission(AFM)이라고 불린 첫 번째 교회가 되었다. 그러나 1918AG에 가입하였다. 그 교회는 치유기도를 행함으로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빈그렌은 1932년 위암 때문에 스웨덴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그사이 AFM은 빠른 속도로 토착화된다. 벨렘에서의 브라질 오순절은 Amazonas(브라질 서북부의 주)지역에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1913년 포르투갈에도 선교사를 파송한다. 또한 브라질 내의 큰 도시들인 레시페(Recife),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 상파울루(Sao Paulo), 뽀르뚜 알레그리(Porto Alegre)로 퍼져나간다. 그들은 여러 도시들에서 교회를 개척하는 것과 치유사역을 강조하였다. 그리하여 놀라운 성장을 경험하였다. 상파울루에서는 1년에 1만명의 개종자들이 침례를 받았고, 현재 이 도시는 1천개의 AG교회들이 있다. 1930AG의 총회는 벨렘에서 리우데자네이루로 옮겼다. 그 스웨덴 지도자인 빈그렌은 브라질 사람에게 권한을 물려주었다. 물론 총회장은 1950년까지는 스웨덴 사람이 이어갔지만. AG는 외국인 사역으로 국가적인 독립교회가 되었다. 그 교회는 미국이나 다른 어떠한 곳으로부터도 인적 물적 지원을 받지 않고 브라질의 모든 주에 퍼져나갔다. 빈그렌이 초기에 스웨덴과 미국에서 지원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 교회는 세계 AG총회에서 독립적인 교회로 간주한다. 이 사람들은 사회 낮은 계층에서부터 전도를 하였다. 그리고 오순절운동은 흑인과 혼혈, 그리고 아메리카의 브라질토착민들에게 어필하였다. 뮬라또(Mulatto(아프리카사람들과 유럽 사람들의 혼혈 흑인과 백인부부사이에서 나온 자녀들))들은 지금도 여전히 AG의 대다수이다. 흑인 브라질 사람들이 다른 교단들에서보다 오순절교단에서 훨씬 더 많다. AG는 성도들을 위한 교육을 하였고 특히 미혼모, 병자 및 고아들을 위한 글 교육을 하였다. 그들의 출판회사를 통해 다양한 교재와 간행물들을 만들어 내었고 또 이를 활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위하여, 공장, 학교, 병원, 요양원, 도서관, 탁아서와 같은 시설들을 설립하였다. 1952년까지 AGCC는 유일한 브라질의 오순절 교단이었다.

1950년대는 ‘modern’이라고 불리는 시기이면서, 오순절운동의 제 2의 시기로서 20~30개의 새로운 브라질 오순절 교단이 생겨난 때이다. 가장 큰 것들은 Igreja Evangelica Pentecostal ‘Brasil para cristo’(Brazil for Christ Evangelical Pentecostal church, BFC), Igreja Pentecostal Deus E Amor(God is Love Pentecostal Church, GLPC), 그리고 Igreja do Evangelho Quadrangular(Foursquare Gospel Church, FGC)이다. FGC1955년 만들어졌다.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에 있는 에이미 맥피어슨(Aimee MaPherson)의 교회에서 온 북미의 치유사역자들의 천막교회운동의 결과물이었다. 그들은 할리우드 배우였던 해롤드 윌리암스(Harold Williams)를 필두로 있던 사람들이다. 현재 이 교회는 미국에서보다 브라질에서 그 회원 수가 더 많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이 교회의 목사의 3분의 1이상이 여성이다. BFC1955년 시작되었다. 이것은 원래는 AG의 복음전도자였고 윌리암의 천막운동가중 하나였던 마노엘 데 멜로(Manoel de Mello)라는 브라질 사람에 의해 세워진 첫 번째 오순절 교회였다. 멜로는 천막운동에서 기적적인 치유로 잘 알려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전도사역의 장소로서 큰 건물이나 경기장을 이용하는 것과 브라질 전통 음악을 이용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상파울루에 있는 그의 교회는 새로운 예배당을 세웠다. 이 건물은 곧바로 철거되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정부의 명령으로 그렇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지만 현재 이 건물은 다시 재건축되었으며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2010BFC4600교회, 그리고 2백만 명에 육박했다. BFC는 가톨릭 은사주의자들과 또한 다른 교회들과 좋은 관계로 성장하였으며, 1969WCC의 회원이 되었다. 그 교회의 거대하고 호화로운 예배당 외에, 현대의 통신과 기술을 잘 활용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국가 정치에도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중산층 사람들에게 호감이 되기도 하였다. 총회장은 1976년 멜로에서 올라프 뉴니스(Olaf Nunes)로 바뀌었다. 멜로는 1990년 그가 죽을 때가지 영적인 지도자로서 남아있었다. 총회장으로 몇몇 지도자들이 있었다. 2012년 총회장은 올라프의 아들인 아이반 뉴니스(Ivan Nunes)였다. 이어 성서대학이 시작되었고, 매주 치유집회와 함께 부흥운동에 중점을 두었다. BFC는 성령을 받는 것에 대한 증거로 방언을 이야기한다.

Igreja Pentecostal Deus e Amor(God is Love Pentecostal Church, GLPC)는 또 다른 뜨거운 브라질의 오순절운동이다. 1962년 상파울루에서 BFC출신의 젊은 설교가이자 멜로의 처남인 데이비드 미란다(David Miranda)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이 교단의 멤버는 2000년 대략 60만명가량으로 추산된다. 또한 이 교회는 축귀와 치유를 강조하였고, 엄청난 숫자의 가난한 사람들과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흑인들 또는 혼혈들로 이루어졌다. 거기에는 구체적이고 제한적인 규정들이 있다. 그리고 남아메리카 전역에 교회를 개척하였다. 일반적으로 브라질 오순절주의자들은, 특히 BFCGLPC, 그리고 UCKG는 상당히 주목받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요소 때문이다.

1975년 이후, 오순절운동의 세 번째 시대가 들어서게 된다. 그것은 사회학자들이 ‘post-modern’시대라고 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20106천개의 교회가 있는 Igreja Universal do Reino de Deus(Universal Church of the Kingdom of God, UCKG)라는 교단에 의해서 말이다. 이것은 번영을 지향하는 치유와 구제운동이다. 1977fldnepwk네이루에서 이전에 지역의 복권 관리자였던 에디르 마셰도(Edir Macedo)라는 주교에 의해서 시작된다. 1990년대 초, UCKG는 브라질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교단이었다. 1천개의 교회, 백만 명이 넘는 회원, 4500만 달러를 들인 방송국(이 나라에서 3번째로 큰 TV네트워크를 소유하고 있다.), 30개의 라디오 방송국, 신문, 고도의 기업가적인 비즈니스 실적들, 정당으로서 국가정치에 참여,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1만석짜리 예배당(이름은 Cathedral of Faith로서 믿음의 성전이라는 뜻이다) 등이 있었다. 2010UCKG7백만 명이 넘는 걸로 추산된다. UCKG는 음반다정신으로부터 치유와 번영, 브라질의 대중적인 심령주의에 대한 다른 악귀들을 집단축귀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인 그곳의 회원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교회에 헌금을 내는 것을 권장한다. 이 때문에 마셰도는 브라질에서 논란이 많은 종교지도자 중 한명이다. 그리고 모든 형태의 신학과 교회들을 비난하기도 하였다. 또한 따로 재산을 축적한다하여 다른 교회 지도자들에게 고발당하기도 하였다. 그는 불법적인 재정거래로 인하여 1992년 체포되어 투옥생활을 하였다. 그는 수감생활이후에도 활동하였는데, 브라질의 대부분의 오순절 교회의 공통적인 모든 형태의 청교도적인(금욕주의적인) 규칙들을 거부했다. UCKG는 전 세계 50개 이상의 나라들에서 사업과 사역을 확장해 나갔다. 특히 포르투갈과 남아프리카 공화국, 아르헨티나에서 성공적이었다. 미국에서 그 교회는 영어를 스페인어로 바꾸기 전까지는 진척이 더뎠다. 그러나 사용하는 언어를 바꾸면서 히스패닉계 사람들을 대상으로 독점적인 사역 교회 형태가 되었다. 영국에서는 마셰도의 처남인 레나또 카르도소(Renato Cardoso)1995년 런던에서 UCKG를 시작하였다. 예배들은 영어로 드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교회는 영국의 흑인들에게 집중하였고 백인의 브라질 목사들 아래 흑인주류 교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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