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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문제의 대안으로서의 오순절주의 본문

Anthropology (인류학)

윤리적문제의 대안으로서의 오순절주의

Museum Park 2018. 12. 17. 14:45

1. 도시에서의 윤리적 상황

 

또 다른 한국 교회에는 교회 밖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안팎으로 윤리의식에 대한 문제가 있다. 한국 교회에 속한 목회자와 성도들 모두는 고도로 발달된 대도시의 영향을 받는다. 그들이 이러한 영향을 받는 것에 대해서 인지하든, 그렇지 않든 다양한 방면에서 영향을 받는다. 첫째로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였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으며, 그 숫자 또한 상당히 크다. 따라서 대도시의 사람들은 성격, 문화, 가치관 그리고 신앙색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자신과 맞는 사람들을 얼마든지 찾아 나설 수 있고 또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조건에 놓여져 있다. 이러한 환경은, 상대적으로 인간관계에 대해서 가볍게 생각하게 하는 경향을 양산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개인주의적인 성격을 점점 더 부각시키게 되었다. 이러한 영향의 결과로 대도시의 사람들은 때때로 고독한 시기들을 갖게 되는 일들이 종종 생기곤 하는데, 그들은 대부분 이럴 때에 자기개발을 위한 노력의 시간으로 활용하곤 한다. 또 다른 대도시의 영향인 비교와 경쟁이라는 의식이 그들을 그냥 놔두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의식은 그들을 가만히 있게 하지 않기 때문에, 대도시의 사람들은 다른 곳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빠르고 바쁜 생활을 한다.

또 다른 대도시가 이 사람들에게 주는 영향 중 하나는 바로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존하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대도시의 기반에 전반적으로 깔려있다는 것이다. 하루 24시간, 일주일 7일 중에서 사실, 믿는 사람들보다는 믿지 않는 사람들과 공존하며 지내는 시간이 더 많은 그들의 입장에서, 그 사회 내에 깔려있는 여러 가지 이해관계와 신앙양심의 갈등을 쉽게 해결할 수가 없다.

이러한 두 가지의 대표적인 대도시의 영향으로 인해 대도시 사람들은 융통성이라는 명목 하에 여러 가지 부분에서 윤리의식이 무너져 있다. 또한 직장생활을 포함한 사회생활에서도, 갑질, 공로가로채기, 불공평한 경쟁, 술자리 그리고 로비 등의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교회에서는 그러한 부분들에 대해서 한동안 무감각했던 것이 사실이었고, 이러한 작은 암세포는 어느새 거대한 암덩어리가 되어버렸다. 한국적 상황 속에서 목회자의 위치에서는 성도들과 속깊게 소통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다른 말로 하면 리더십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눈과 귀가 닫히거나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기 쉽다는 것이다. 죄와 관련된 치부의 부분을 입장과 체면이라는 명분하에 숨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대도시에서, 적어도 청년들안에서 통용해주어야 하는 문화로서 음주와 편법이라는 것이 당연한 것 마냥 여기는 풍토가 생겨나고 있다. 목회자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술 없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비교와 경쟁 속에서 학점과 취업, 사업 그리고 나아가서는 승진 등의 일들에 편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인식이 편마하게 자리잡혀버린 시대가 되어버렸다. 교회가 쉽사리 그러한 부분들을 건들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왕 중의 왕이고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는 나약한 믿음이 깃들어버린 대도시의 상황 속에서, 이러한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불과 2,30년 전만해도 한국교회는 한국의 문화 등의 모든 것을 이끌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주객이 전도되어, 교회가 세상의 흐름에 이끌려가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비율적으로 7일중 하루, 혹은 2,3일 교회에서 몇 시간 신앙적 교육을 받는 것과 7일중 적게는 4,5일에서 6일씩 세상 속에 들어가서 사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어디에서 더 영향을 받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러한 비율만 생각해보더라도 자명해진다.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부분을 건들지 않고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 할 수 없을 것이다. 보여지는 부분, 형태와 외관에 치중한 것이 아니라 사실 진짜 의미에 대한 질문을 분명하게 던져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가 윤리적인문제를 해결하고자 성도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어떠한 것이 있을까? 그 대안은 바로 기도와 선교에 집중된 오순절적 목회방식이 가장 적합한 방법일 것이다.

 

 

2. 윤리적문제의 대안으로서의 오순절주의

 

대도시권에 입성하여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지적으로 높은 수준을 갖고 부유한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렇게 똑똑하고 돈이 많은 사람들에게 약한 부분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자신만의 환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종교성이 강한 한국 사람들의 민족적 특성이 거기에 촉매제와 같은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현재의 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육체적 한계, 과학으로 밝혀낼 수 없는 자연의 신비 또는 초자연적인 현상, 무의식의 세계, 거기에 더해서 종교성으로 인하여 영적인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 등이 대도시 사람들에게 많이 자리 잡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자신들이 갖고 있는 것들과 노력해서 얻은 것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혔을 때, 그들은 커다란 실망감을 갖게 되는 경우들이 있다. 또한 꿈, 무의식, 영적이거나 신비한 체험 등에 대해서도 대단한 호기심과 두려움이 있다.

대도시의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스스로가 납득하게 되면 과감하게 뛰어드는 경향이 있다. 그간 자신들의 삶 자체가 자신들의 선택이 더 낳은 결과를 안겨다 주어 여기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인 서울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스스로가 확신을 가지고 선택하게 되면 그것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는 것이다. 한 예로, 목회자들 사이에서도 한국 내에서 목회를 하며 지역적인 특성들이 있다고 한다. 도시선교를 계획할 때도 지역연구가 가장 중요한 것임을 강조하곤 하는데, 특별히 서울을 중심으로 한 경기도 수도권에서는 목표를 제시해주고 스스로 참여하게 하여 만들어나가도록 한다면, 적극적으로 목표를 달성해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고들 한다. 이렇듯, 대도시의 사람들, 특히 고도로 발달된 대도시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은 영적인 세계에 대한 동경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들을 자극하면서도 건전하고 건강한 신앙생활을 유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오순절주의라고 본다. 지속적인 기도로의 초청과 훈련, 그리고 거기서 얻어지는 통찰과 자극을 동력삼아 선교적으로 살고자 하는 스스로의 노력이 선순환으로 이루어지는 이 오순절주의가 접목되어 오순절적 목회야말로 이러한 윤리적 문제들을 건강하게 해결할 수 있는 분명한 대안인 것이다.

오순절주의에서는 주로 기도와 선교를 강조한다. 집중된 기도를 통해서 영적세계에 대한 체험과 이해를 많이 갖도록 요구한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소통을 의미하는데, 사실 이 소통의 장은 수많은 죄악들로 오염되고 막혀 있곤 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도,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려면, 먼저 잘못을 시인하고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죄로 인해 단절되어진 하나님과의 관계와 소통의 장을 먼저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온전한 소통, 온전한 기도를 위해서는 먼저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레슬리 뉴비긴 역시 회심을 요구하였다. “회심은 그리스도를 향해 방향을 전환한다는 뜻이고 그분과 똑같이 기름부음을 받고 복음을 선포하고 죄를 짊어짐으로써 그 능력을 힘입어 그 분의 사역을 이어가는 것이라 하였다.”그렇기에 기도를 강조하는 은사주의계통의 교회들이나 오순절주의 교회들에서는 회개기도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본 연구자 역시 알게 모르게 마음으로, 생각으로, 행동으로 그리고 말로 짓는 죄들이 많이 있음을 알고는, 짧게 혹은 간단하게 기도할 때도 먼저 회개하는 기도를 반드시 한다. 대도시의 사람들은 이성과 논리의 영역이 발달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회개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큰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회개에 대한 요구를 통해 그들은 자의와 타의, 둘 중 어떤 것에 의해서든 하나님께 죄의 문제에 대한 해결을 구하게 된다. 또한 지속적인 회개에 대한 촉구는 스스로 자신의 죄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한다. 이를 통해 기도가 다시 이어지는 선순환이 시작된다. 아울러서 이러한 기도와 고민 속에서 얻어진 통찰은 곧 삶속에 적용하고 시도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옮겨지게 되는데, 이것은 오순절주의의 긍정적 영향중 하나이다.

또한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것을 토대로 신앙생활에 집중하고 열심을 내는 것이 오순절주의의 특징이기 때문에, 본인이 겪은 확실한 것을 전하고자 하는 성향이 짙어진다. 그래서 오순절주의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선교적인 역할을 크게 하고 있으며, 그 성장속도 역시 압도적이다. 오순절 선교사 연합(Pentecostal Missionary Union)의 세실 폴힐(Cecil Polhill)이제는 오순절운동이 진짜 선교운동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지난 한 세기동안 오순절주의자는 약 100만 명에서 6억 명을 웃도는 숫자로서 비약적으로 늘어나기도 하였다.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은 교회의 일치와 함께 선교적 교회를 주장하였다. 이것은 사실 선교적 교회의 모토자체의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안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의 대도시의 실정과 같이 복잡하게 이해관계가 이미 얽혀있는 상황 속에서 사실 일치를 시도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한국의 교회들, 특별히 대도시권에 분포하고 있는 한국의 교회들이 선교적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오순절적인 목회형태로 탈바꿈해야만 할 것이다. 직접적인 스스로의 체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오순절주의는 그 무엇보다도 확신의 면에서 가장 확고하다고 할 수 있다. 분명하게 제시하고, 분명하게 선포하며, 분명하게 설명하고 또 분명하게 추진할 수 있는 원동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교회적인 차원이 아니라 모든 교회공동체의 회원들 하나하나가 선교적으로 변하여, 자연스럽게 선교적 교회를 이루어 갈 수 있는 것이다.

윤리적인 문제들이 대두되고 또 이러한 문제들 중 심각한 형태의 문제들이 사회적인 이슈로 부각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교회에 대한 그리고 목회자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의 개신교세가 감소하고 있는 데에는 이러한 요인들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중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당장의 상황에 매여 있기보다는 앞으로의 한국 교회를 생각하고 교회와 목회자들의 이 다음세대에게로의 건강한 계승을 위해서도 반드시 길게 내다보는 고민이 있어야 한다. 오순절주의는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근본적인 부분부터 다시금 재정립해나가게 하는 좋은 대안이 된다. 왜냐하면, 기존의 교회 내에 기존의 목회형식과는 상당히 다른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인부분부터 다시금 다루어가게 된다면 대도시권에서 일어나는 윤리적인 문제들도 충분히 바뀌어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오순절주의가 한국의 교회 내에 들어와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또한 너무나도 필요로 하고 있다. 영적인 부분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는 지금의 시대에 무엇보다도 교회 내에 필요한 것은 오순절적인 목회방식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분명한 체험과 이해를 가져다줄 수 있는, 그러니까 현 시대의 목회공백으로 여겨지는 부분을 분명하게 채워줄 수 있는 이 시대, 특별히 대도시권에 너무나도 필요한 목회의 형식이 바로 오순절주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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