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hropology (인류학)

아프리카신학에 대한 평가

Museum Park 2018. 12. 15. 12:05


제3세계 신학의 주류 가운데 하나가 아프리카 교회에서 태동되고 있다. 대륙 아프리카는 다른 어느 지역보다 선교사들이 혹독한 시련을 겪으며 선교의 대가를 치룬 곳이었으나 그만큼 더 많은 결실을 거둔 곳이기도 했다. 아프리카 개신교 최초의 선교는 1737년 모라비안 선교사 게오르그 슈미트(Georg Schmidt, 1709~1785)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아프리카 교회는 식민지적 교회의 모습을 탈피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새롭게 증거하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1900년에 아프리카 전체 국민의 7퍼센트에 불과했던 기독교인이 2018년에는 약 6억 3,100만 명으로 아프리카 전체 인구의 45%를 차지고 있다.




아프리카의 흑인교회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제3세계의 신학적 자각은 서구인들의 지배이데올로기에서 독립된 아프리카신학을 형성하게 만들었다. 그리스도가 선포한 해방의 복음과 아프리카인들의 문화적 전통을 접맥시키는 토착화신학을 제기하게 된 것이다. 이는 또한 아프리카의 정치·사회·문화적 상황에 근거한 아프리카신학이 생성되어야 한다는 자각이기도 하다. 동시에 백인지배에 대해 저항하는 흑인의식에서 허영된 복음해석이 해방의 신학을 제시하고 있다. 흑인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해석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메시지를 증거할 수 있다는 전제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 연구에서는 아프리카신학과 그 형성 배경을 소개하고 평가하고자 한다.




아프리카신학은 진정한 의미에서 토착화 신학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말은 신확화의 과정을 거치고, 그것을 나름대로 잘 받아들여 그들의 교회와 신앙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신학은 기독교 신앙의 해석과 표현으로 구체적 인간의 반성에 근거한다. 이것은 아프리카신학은 구체적인 정황에서 민중들의 언어, 민속, 민중 종교 등을 신학에 과감하게 도입할 수 있는 신학적 근거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일련의 신학화과정을 거치고, 그것을 나름대로 수용적으로 받아들여 그들의 교회와 신앙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반대로 우리나라의 경우, 토착적 신앙형태는 남아있는지 몰라도, 토착적 신학을 유지하고 발전시켜오지 못하였다. 그러한 부분과 비교하여 생각해보자면, 아프리카신학에 대한 그들의 수용적 자세와 자부심은 상당히 칭찬할만한 일이다.




상황적으로 아프리카 교회와 신학자들은 서구 신학을 거절해야만 했다. 서구의 신학은 아프리카의 역사적 정황과 사회적 정황이 너무도 달랐다. 전혀 다른 생활양식, 문화, 그리고 군림과 억압이라는 위치의 차이 등. 이러한 서로 다른 상황속에서 진정한 복음의 의미를 전달해주는 것은 서구적 방식으로는 적절하지 못하였다. 아프리카인들에게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 속에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해방의 작업에 대한 참여와 자기 긍정이 바로 그들의 신학이고 그들의 신앙이 된 것이다.






아프리카교회들과 아프리카 독립교회들이 함께 아프리카신학을 적립해나가는 모습은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자신들만의 문화와 신학을 연결하여 자신들의 신앙형태를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것을 정리하고 수정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빈틈이 있다. 그것은 위에서 언급했던것과 같이, 자칫 혼합주의로 빠질 수 있는 위험성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아프리카신학이 지금까지 자신들의 문화와 사고를 충분하게 잘 반영하였다면, 잘 정리된 서구의 신학을 이제는 차용하여 자신들의 신학을 역으로 신학화 해보며 문제의 여지에 대한 오차범위를 줄여나가는 신학작업이 필요할 것으로 보여진다.